운동장 모퉁이에 남은 옛 관청
부평도호부 관아
초등학교 운동장 한쪽 모퉁이에 오래된 기와집 한 채가 서 있습니다. 아이들 웃음소리 곁에 남은 이 건물은 옛 고을 관청의 일부입니다. 바로 부평도호부 관아입니다.
부평은 오래전부터 큰 고을이었습니다. 고려 의종 때 안남도호부가 되었습니다. 고종 때에는 계양도호부로 불렸습니다. 조선 태종 때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올라섰습니다. 관아는 이 무렵 짓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. 숙종 때 고쳐 지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.
옛 기록인 《부평부읍지》에는 많은 건물이 적혀 있습니다. 고을 수령이 일을 보던 동헌이 있었습니다. 손님을 맞던 객사와 근민당, 사령청, 향청, 포도청도 있었습니다. 창고인 부창도 있었습니다. 그 규모가 인천도호부를 넘어섰다고 합니다. 부평이 고려 때부터 이름난 큰 고을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.
그런데 이곳에 학교가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. 대부분의 건물은 헐렸습니다. 남은 건물 하나만 운동장 모퉁이로 옮겼습니다. 처음 옮겼을 때는 석축 위에 선 기역 자 모양의 집이었습니다. 그 뒤 다시 옮기면서 석축과 날개 부분을 떼어 냈습니다. 그래서 지금은 일 자 모양의 집이 되었습니다. 정면 여섯 칸,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집입니다.
이 건물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. 옛 모양으로 미루어 동헌이었을 것으로 봅니다. 수령의 살림채인 내아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.
건물 곁에는 네모난 연못 욕은지가 있습니다. 긴 장대석으로 반듯하게 쌓은 연못입니다. 여기에는 정조 임금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. 정조는 생부인 장헌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겼습니다. 그리고 해마다 한 차례씩 찾아가 절을 올렸습니다. 어느 해 김포 장릉과 현륭원을 참배하는 길에 부평에 들렀다고 합니다. 부사를 불러 만나고 활을 쏜 뒤, 이 욕은지에서 손을 씻었다고 전해집니다.
관아 옆 은행나무와 욕은지를 차례로 살펴보세요. 임금이 손을 씻었다는 네모난 연못 앞에서 그날의 행차를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.
방문 팁
- · 학교 안에 있는 유적이라 수업 시간에는 출입이 제한될 수 있으니 안내에 따르세요.
- · 건물 아래 장대석과 네모난 초석을 살펴보면 옛 관아 건축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.
- 주소
- 인천광역시 계양구 어사대로 20 (계산동, 부평초등학교 내)
- 지정
- 시도유형문화유산
기본 정보 출처: 국가유산청. 도슨트 원고는 펜션라이프가 출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·검수했습니다.




